테르미도르의 반동(Thermidorian Reaction) 또는 테르미도르의 쿠데타는 프랑스 대혁명 이 후 권력을 잡게 된 막시밀리앙 로베스피에르가 반대파를 무자비하게 숙청하는 공포정치 끝에 결국 살해당한 사건이다.

자코뱅파가 1793년부터 1794년 사이에 프랑스 내외의 전란을 수습한 후 국민은 공포 정치에 싫증을 느끼게 되었다. 1794년 봄에 에베르파와 당통파가 숙청을 당하면서 자코뱅파의 일부는 국민 공회의 중도와 긴밀하게 협력하여 로베스피에르를 타도하려고 했다. 또한, 공포 정치의 선봉으로 파리보다 더 심한 탄압을 했던 지방 파견 의원들(조제프 푸셰, 장 랑베르 탈리앵 등)은 로베스피에르의 추궁을 두려워하여 선제공격을 계획하고 있었다

테르미도르(Thermidor)는 혁명 때 제정된 프랑스 혁명력(후에 나폴레옹에 의해 폐지) 중 11번째 달을 의미한다. 이 사건으로 인해 프랑스 혁명은 실질적으로 끝나게 되고, 시민 혁명은 종말을 고했다. 슈테판 츠바이크는 평전 《조제프 푸셰》에서 테르미도르 반동 이전에는 "혁명은 모든 정당성이 자신에게 있다고 주장하였고 모든 책임을 묵묵히 떠맡았던" 반면 반동 이후에는 "혁명은 부당한 일을 한 적도 있다는 것을 소심하게 인정하고 지도자들은 혁명을 부정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정신적 신앙과 세계관이 스스로의 절대적 정당성과 무오류성을 부정하게 되면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는 힘은 꺾여버린다."고 서술한다.

공포정치로 국가를 안정시키고자 했으나 오히려 국가를 혼란에 빠트린 로베스피에르는 7월 28일 푸키에 탱빌에게 고발당해 자신이 혁명 정신과 국가 안보를 운운하며 많은 사람을 죽였던 도구인 기요틴에 올라가 생쥐스트, 쿠통, 오귀스탱 및 18명의 동료들과 함께 처형당했다.

로베스피에르의 죽음으로 혁명 주도권은 부르주아 계층, 지롱드 파의 온건파들이 쥐게 되었고, 총재 정부, 통령 정부,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등장까지 테르미도르의 반동을 기점으로 새로운 국면이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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