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92년 '해군 제독'으로 임명되었던 탐험가는?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는 이탈리아 제노바 출신의 탐험가이자 항해가이다. 1484년 포르투갈의 왕 주앙 2세에게 대서양 항해 탐험을 제안하고 지원을 요청하였으나, 희망봉 루트를 준비 중이던 왕이 허락하지 않자, 스페인으로 갔다. 당시 스페인은 카스티야와 아라곤으로 구분되어 있어, 카스티야 여왕 이사벨 1세와 아라곤 왕 페르난도 2세가 카스티야를 공동 통치하고 페르난도가 아라곤을 단독 통치하는 상태였다. 정치, 지리, 종교적 통일을 이룩하고 국가의 비상을 꾀하던 이사벨과 페르난도 부부는 해외 진출에 관심을 갖고 있었지만, 콜럼버스가 기사와 제독 작위, 발견한 땅을 다스리는 총독의 지위, 얻은 총 수익의 10분의 1이라는 실현 가능성 없는 조건을 제시하자 포르투갈에서와 마찬가지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나 당시 스페인 교회의 성직자들은 포르투갈 교회에 대한 경쟁의식으로 더 넓은 선교지를 필요로 했고, 때문에 콜럼버스를 위해 여왕을 설득했다. 결국 이사벨이 콜럼버스를 등용하였다. 이사벨 여왕은 콜럼버스를 해군 제독에 임명하였고, 그가 발견하는 것의 10퍼센트(%)를 콜럼버스의 소유로 한다는 조건 하에 선박 2척(핀타호와 니나호)을 내주고 과거에 죄를 지은 자들은 면죄해 준다는 조건으로 승무원 모집에도 협력해 주었으며, 또 팔로스항(Palos)에 사는 핀손이라는 선장이 자기 소유의 선박인 산타 마리아호와 함께 참가하였다. 계약 후에도 이사벨 여왕이 계속 지원을 미뤘기 때문에, 실질적인 항해까지 걸린 시간은 6년이나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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