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나팔바지라고 부르지만 서양에서 유래한 원래 명칭은 벨-보텀(bell-bottoms)이다. 바지의 위가 좁고 아래가 넓은 것이 종 모양이라고 해서 그렇게 부른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벨-보텀을 언제, 누가 나팔바지라고 부르기 시작했을까. 언제부터 우리가 '나팔바지'라는 단어를 썼는지 명확한 근거는 남아있지 않다. 다만 동아일보 1931년 9월 2일자에 실린 조용만의 단편소설 '방황'에 보면 "그러자 저쪽 테불에서 이리 향해서 오리거름 처오는 나팔바지 '똔-팡'이로사"라는 문장이 나온다. 이것이 아마 공공지면에 나팔바지가 처음 등장한 사례가 아닐까 한다. 그런데 당시 각종 패션 명칭은 대부분 일본을 거쳐 와세이에이고(和製英語), 즉 일본식 영어 형태로 들어왔다. (이를테면 마후라, 판타롱) 벨-보텀도 일본에서 이미 '베루보토무(ベルボトム)'라고 부르고 있었는데, 우리말로 고쳐 나팔바지라 불렀으니 당시 시대상황을 고려해보면 특이한 현상이었다. 아마도 소설가 조용만 혹은 다른 문학인이 '나팔바지'란 단어를 만들어 쓰자 어감이 좋아 다들 쓰게 된 것이 아닐까 한다.

나팔바지, 즉 벨-보텀의 유래는 항해 시대가 열린 16세기 영국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선원들은 크고 헐렁한, 슬롭(slop)이라고 부르는 바지를 입었다. 품이 넓고 헐렁하여 움직이기 편하고 걷어입기 좋은 옷이었다. 바닷물 가득한 갑판이라는 작업환경에 최적화된 복장이었다. 시대가 흘러 대영제국 해군이 고유의 제복을 고안하여 입기 시작한 17세기 말, 18세기에도 해군 병사들은 여전히 슬롭을 입었다. 육군의 복장을 딴 제복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통이 좁고 뻣뻣한 옷을 입고서는 갑판 위 일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1857년 대영제국 해군은 모델명 넘버-원(No. 1)이라는 제복을 만들어 보급했는데 이때 하의에 적용한 것이 슬롭의 장점을 차용한 벨-보텀 디자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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