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5년 6월 18일, 웰링턴 공작 아서 웰즐리는 브뤼셀로 진격하여 베네룩스 지역을 점령하려는 나폴레옹을 막기 위해 워털루 남쪽 생 장 산의 산마루에 영국, 벨기에, 네덜란드, 하노버 등 다양한 국적으로 이루어진 자신의 군대를 배치했다. 웰링턴은 수적으로 열세였으며 군인 중 일부는 자질이 의심스러웠다. 황제의 군대를 제압할 수 있을 만한 장소라고 미리 점찍어 두었던 이 산등성이에서 그는 프랑스군의 습격을 기다렸다.

엘바 섬에서 나폴레옹이 돌아오자, 그가 전에 거느렸던 군대와 사령관 대다수는 다시 한 번 이 강력한 지휘자의 편에 모여들었다. 그는 브뤼셀을 향해 신속히 진격해 카트르브라에서는 웰링턴의 군대를 밀어붙이고 리니 전투에서는 웰링턴 군대의 좌익에 있던 프로이센 부대를 물리쳤다.

전투 전날에 밤새도록 폭우가 내렸고, 나폴레옹은 아침나절이 되어 땅이 마를 때까지 공격을 연기했다. 그는 집중 포격을 가해 전투를 시작했고, 다음으로 보병대를 돌격시켰으며 마지막으로 영국군 진영을 향해 대규모 기병대를 투입했다. 영국군은 동맹군의 지원을 받아 가며 하루 종일 이 맹렬한 공격을 받아냈고, 대열을 유지하며 우구몽과 라 에이 생트라는 두 군데의 중요한 농장을 지켰다. 오후가 되자 라 에이 생트는 수비군의 탄약이 다 떨어져 함락되었고, 웰링턴의 대열은 무너질 것만 같았다. 이번에는 운명이 나폴레옹을 돕지 않았다.

교묘히 이동해 웰링턴을 돕게 된 블뤼허 원수의 프로이센군이 나폴레옹군의 좌익을 공격했다. 나폴레옹은 전장에서 적군을 몰아내기 위한 최후의 시도로 연합군 진영을 향해 가장 노련한 부하들이자 비장의 카드인 황제 근위대를 돌격시켰다. 그러나 영국군 머스킷 총 부대와 마주하자 근위대는 달아나 버렸다. 나폴레옹은 최후의 전투에서 패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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