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9년 노벨 평화상 후보에 올랐다가, 같은 해 2월 후보 추천이 철회된 인물은 누구였을까요?
홀로코스트라고 불리는 유대인 대학살 사건의 주범, 아돌프 히틀러(Adolf Hitler, 1889.4.20 ~ 1945.4.30)가 1939년 무려 노벨 평화상 후보로 추천받은 사실이 있었다. 추천을 받은 시기는 히틀러가 폴란드를 침공해 제2차 세계대전의 일으키기 불과 몇 달 전이었다. 히틀러를 노벨평화상에 추천한 인물은 스웨덴의 국회의원 E.G.C. 브란트였다. (노벨평화상 후보를 추천할 수 있는 사람은 각국 정부 관료, 국회의원, 대학교수, 과거 노벨평화상 수상자, 전·현직 노벨위원회 위원이면 가능하다.) 이 스웨덴 국회의원은 나중에 '웃자고 한 일'이라며 추천을 철회했지만 두고두고 비난을 받아야만 했다.
<히틀러와 노벨상>
히틀러는 노벨상에 대해 강한 거부감을 지니고 있었는데 결정적인 계기는 따로 있다. 독일의 작가이자 언론인이었던 카를 폰 오시에츠키가 1936년 노벨 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된 사건이 바로 그것이다. 오시에츠키는 원래 1935년 노벨평화상 수상이 유력했으나, 나치의 무력 개입을 두려워한 노벨상위원회가 1936년에야 전년도 수상자로 소급 선정해 발표했다. 함부르크에서 태어난 오시에츠키는 히틀러가 집권하기 전인 1차 세계대전 때부터 골수 반전주의자로 유명했다. ‘세계무대’라는 잡지에 반전 논설을 잇달아 싣다가 반역 혐의로 수감된 전력이 있으며, 히틀러 집권 이후에는 반 나치 운동의 선봉에 섰다. 게슈타포에게 체포돼 혹독한 고문을 당하던 그에게 노벨상위원회가 평화상을 수여한다고 발표하자 히틀러는 격노했다. 그는 이 사건을 독일인에 대한 모독이라고 비난하며 모든 독일인에 대해 노벨상 수상을 금지한다는 명령을 내렸다. 수감 상태에서 시상식에 참석할 수 없었던 오시에츠키는 결국 1938년 5월 강제수용소에서 결핵으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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