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 근로기준법 준수를 요구하며 분신자살한 사진 속 동상의 주인공은?
전태일(全泰壹, 1948.8.26 ~ 1970.11.13)은 한국의 노동운동을 상징하는 인물로 봉제노동자로 일하면서 열악한 노동조건 개선을 위해 노력하다가 1970년 11월 노동자는 기계가 아니라고 외치며 분신하였다. 그의 죽음은 한국 노동운동 발전에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당시 전태일이 일하던 청계천의 평화시장은 인근의 동화시장, 통일상가 등과 함께 의류 상가와 제조업체가 밀집되어 있는 곳이었다. 공장들은 모두 영세한 규모여서 작은 곳은 6.6m²의 공간에 13명이 일하는 곳도 있었고, 큰 곳은 40m²의 공간에 50여 명이 일했다. 이처럼 좁은 공간에 다락을 만들어 노동자들을 밀집시켜 일을 시키다 보니 노동환경이 매우 열악했다. 노동자들은 햇빛도 비추지 않는 좁은 다락방에서 어두운 형광등 불빛에 의존해 하루 14시간씩 일을 했다. 환기 장치가 없어서 폐 질환에 시달리는 노동자들이 많았다. 이들은 대부분 여성이었는데, 특히 ‘시다’라고 불린 보조원들은 13~17세의 어린 소녀들로 초과근무수당도 받지 못한 채 극심한 장시간 저임금 노동에 시달리고 있었다. 자신이 가난에 시달리면서도 주변 사람들의 어려움을 외면하지 않았던 전태일은 어린 여성 노동자들이 열악한 노동환경에 시달리는 것을 보면서 노동운동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1969년 6월 동료 노동자들과 함께 ‘바보회’를 만들어 설문으로 평화시장의 노동환경을 조사하며 근로기준법의 내용을 알렸다. 그러나 이 사실이 사업주들에게 알려지면서 전태일은 해고되었고, 평화시장에서 일할 수 없게 되었다. 한동안 공사장에서 막노동을 하며 지내던 전태일은 1970년 9월 평화시장으로 돌아와 삼동회를 조직했다. 전태일과 삼동회 회원들은 1970년 11월 13일 평화시장 앞에서 근로기준법 화형식을 벌여 근로기준법이 노동자의 권리를 제대로 보호하지 못하는 현실을 고발하기로 했다. 경찰의 방해로 시위가 무산되려는 상황에 놓이자 전태일은 자신의 몸에 석유를 뿌리고 불을 붙인 채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등의 구호를 외쳤다. 병원에 실려 간 전태일은 어머니에게 “내가 못다 이룬 일을 어머니가 대신 이뤄주세요”라는 유언을 남기고 그날 세상을 떠났고, 경기도 마석의 모란공원에 매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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