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차 세계대전에 이르러 전쟁은 전후방의 구별이 거의 없는 총력전 내지 전체전의 양상을 띠었다. 주요 교전국은 다 같이 총동원령을 내려 싸울 수 있는 자를 전선에 보내고, 남자는 무기나 기타 군수물자의 생산과 수송에 종사하였으며 부족한 노동력은 여성으로 메꾸어졌다. 그렇기에 병사들의 사기만이 아니라 국민전체의 사기가 전쟁의 승패를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가 되었으며 이런 상황에서 선전전이 큰 몫을 차지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양측이 다같이 자기들의 행동과 전쟁목적을 정당화하고 이상화하는 반면, 상대방을 무자비하게 비방하며 공격하였다. 이 선전전에서 영국과 프랑스는 독일에 승리하였다.

특히 미국의 참전 후에는 세계의 여론이 압도적으로 연합국 편으로 기울어졌는데 연합국은 세계대전이 전체주의에 대한 민주주의의 싸움이며, 정복의 야욕에 불타는 전제적 지배자들로부터 자유를 수호하기 위한 전쟁임을 밝히고, 미국의 윌슨 대통령은 민주주의의 안전과 영구적인 평화를 위한 전쟁임을 선포하였다. 이는 국민의 사기 진작만이 아니라 중립국의 여론을 유리하게 유도하는 데 있어 폭탄보다 때로 더 효과적이기도 했다.

독일의 잠수함 공격이 위력을 발휘하게 된 것은 해전사상 처음 있는 일인데 이처럼 1차 세계대전에는 새로운 무기가 많이 등장. 독일은 체펠린(Zeppelin) 비행선으로 1916년부터 다음 해에 걸쳐 런던을 여러 번 공격하였으며 1903년 라이트 형제가 발명한 비행기가 등장하였는데 이 비행기는 폭격보다는 주로 정찰임무에 크게 활약하였으며 그 이후 전투기가 크게 발달하였다. 독가스는 1914년 10월에 독일군에 의해 처음 사용되었으나 이것은 별로 효과가 없었지만 다음해 4월에 개량된 독가스는 프랑스군을 놀라게 하였다. 이에 대한 대책으로 방독마스크가 고안되어 양측이 다같이 사용함으로써 독가스의 위력은 줄었다. 다음에 등장한 신무기는 탱크로서 영국이 처음 발명하여 1916년 전선에 등장하였으며 독일도 이를 곧 생산하였다.

해설 더 보기: terms.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