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틀러를 동경한 어릿광대

홀로코스트를 온몸으로 견뎌내야 했던 유대인들에게 이성과 도덕이 충돌하는 야만의 삶은 더 큰 딜레마를 던져주었다. 우치 게토의 유대 장로회 의장이자 괴짜 지도자, 욕심 많은 야심가이자 히틀러를 모방한 독재자였던 하임 룸코프스키(Chaim Rumkowski)의 행적은 실로 많은 점을 생각하게 해준다.

1940년 2월에 문을 열어 한창 때는 16만 명에 이르는 유대인을 수용한 우치 게토는 1944년 가을에 폐쇄됐다. 규모로는 바르샤바 게토에 이어 두 번째였지만, 존속 기간은 가장 길었다. 무시 못 할 우치 게토의 산업 생산량 때문이기도 했지만, 룸코프스키의 독특한 개성도 한몫을 했다.

나치 침공 당시 그는 우치에서 유대인 고아원을 운영하고 있었다. 보험대리인에서 사회사업가로 변신한 후여서 사회적 존경도 받고 있었지만, 고아들에게 ‘건전하지 못한’ 관심이 크다는 소문도 있었다. 정력적이면서도 교양 없고 권위적이라는 평판이 자자한 홀아비였다.

나치 침략자들이 룸코프스키를 우치 게토의 장로회 의장으로 지명한 정확한 배경은 알 길이 없다. 끔찍이도 권력을 사랑했고 수완이 좋은 룸코프스키라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자신이야말로 의장 자리에 적임자라고 나치를 설득했을 것이다. 혹은 나치가 이 우스운 자를 조롱 삼아 장로회 의장으로 임명했는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그는 임명되자마자 우치 게토에 대한 전권을 인정받았다. 장로회가 만들어진 지 겨우 3주 만에 자신의 지시를 따르지 않는 위원들을 나치 상부에 고발하여 제거했으며, 랍비의 종교행위가 금지된 상황에서 유대인의 결혼을 주관하는 등 우치 게토 안에서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을 모두 지배했다.

신관의 영역까지 장악한 무소불위의 이 전제군주는 나치의 상부에 일일이 보고하고 재가를 받아야 한다는 점에서는 우물 안의 개구리였지만, 그 안에서 행사할 수 있는 권력의 크기는 유례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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