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리우스 카이사르는 로마가 낳은 걸출한 인재로서 포에니 전쟁 이후 표류하기 시작한 로마 제국의 체제를 개혁하려고 했던 인재인 동시에, 공화정을 파멸시킨 독재자라는 양극의 평가가 존재하는 인물이다. 카이사르는 호민관의 권위를 세우겠다고 얘기한 지 한달도 안 되어서 자기 계획에 반발한 호민관을 죽여버리겠다고 협박하기도 했다. 공화정만으로 로마가 결코 유지될 수 없다는걸 알아차리고 개혁을 꿈꾸던 인물이라는 평과 그저 최고가 아니면 참지 못했던 성격 때문에 최고 권력자 자리에 도전했던 사람이라는 평이 갈린다. 어쩌면 둘 다였을지도. 하지만 엄청나게 유능하고 정말로 대단한 인물이었다는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으며 그가 행했던 정책은 당시 로마에서 정말로 필요했던 것들이다.

암살이 결행된 날짜인 3월 15일은 유명하다. 그가 파르티아 정복을 원로원에 공표하려고 했던 날이기도 했지만, 훗날의 문학적 창작력으로 여러 가지 의미가 덧붙여졌다. 하지만 카이사르 한명이 없어진다고 수백년전의 공화정으로 돌아갈 수는 없는 일이었고, 복고주의 세력(소위 공화파)은 이런 현실을 인식하지도 못한 채 낙관적으로 행동하다가 자멸했다. 훗날 카이사르의 후계자 아우구스투스가 제정을 세우면서 그들의 암살은 그 의미가 사라진다.

고대 로마에서는 날짜를 매달 초하루(Kalendae)와 이두스(Idus_를 기준으로, "무슨 달 초하루 며칠 뒤", "무슨 달 이두스 며칠 전" 하는 식으로 표시했다. 이 중 이두스(Idus)는 3, 5, 7, 10월에는 15일, 그 외의 달에는 13일을 말하며 카이사르가 살해된 3월 15일은 라틴어로 Idus Martii(3월의 이두스)가 된다. 영어로도 이를 번역하여 Ides of March(3월의 이데스)라는 표현이 존재하며, 이는 카이사르가 암살된 날을 가리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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