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팔미도 등대는 한반도에 처음으로 들어선 근대식 등대로, 1902년에 착공해서 1903년에 준공되었다. 최초 점등일은 1903년 6월 1일이다. 등대의 총 높이는 약 8m이며, 형태는 지름 약 4.67m의 원통형이다. 처음 건설했을 때의 형태가 아직도 잘 남은 편이다.

다만, 등대를 세우기는 대한제국 조정이 하였으나, 실제 건설에는 일본 제국의 입김이 많이 작용했다. 등대가 점등하고 1년 뒤에 발발한 러일전쟁때 일제가 꽤나 요긴하게 써먹었다고 한다.

등대가 세워지고 47년이 지난 1950년, 대한민국 근현대사에 팔미도 등대가 다시 한 번 등장했다. 6.25 전쟁 중 시행된 인천 상륙 작전에서, 팔미도는 작전 수행 상 상륙 부대의 진로에 위치한 주요 요충지였고 이로 인해 섬과 등대는 반드시 확보해야 하는 거점이었다. 또한 자정을 넘은 심야에 상륙 부대가 안전하게 상륙하기 위해서는 등대불의 인도가 필수적이었다. 따라서 북한군의 수중에 떨어져 있던 이 등대를 UN군이 탈환하여 수복하였고, 등대의 불을 밝히는 것으로 인천상륙작전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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