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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량해전을 승리로 이끈 장군은?
명량해전(鳴粱海戰)
마침내 왜적선 8척이 8월 28일 새벽 6시쯤 어란진(於蘭鎭) 앞바다에 출현하였다. 이순신 함대는 장도(獐島)로 이동하여 밤을 지내고, 8월 29일 진도의 벽파진(碧波津)에 도착하여 보름 동안 머물렀다 9월 15일 조수를 타고 해남군 문내면 우수영(海南郡 門內面 右水營)으로 진을 옮기어 울돌목을 지켰다. 이순신은 전라우수사 김억추(金億秋)에게 수중철색을 쓸 수 있도록 명령을 내리는 등 만반의 준비를 갖추었다. 왜적선은 200여 척 가운데 55척이 9월 14일 어란진에 도착하였고, 9월 16일 오전 11시쯤 전투가 시작되었다. 일차로 수중철색에 왜적선이 걸려 전진하지 못하자, 곧바로 뒤를 따라오던 왜적선이 그들의 앞 배에 충돌하게 함으로써 왜적선 133척 가운데 무려 31척을 깨뜨리는 전과를 올렸다.
원균
1592년(선조 25) 경상우도 수군절도사에 임명되어 부임한 지 세 달만에 임진왜란이 일어난다. 원균은 그에 맞서 싸우지 못하고 경상우수영의 모든 배를 불태워 가라앉히고 퇴각했으며 전라좌도 수군절도사이던 이순신에게 원군을 요청한다. 이순신은 5월 2일 조정의 출전명령을 받고 지원에 나선다. 이순신과 합세하여 옥포해전에서 적선 26척을 격침시킨 이후 합포해전, 사천포해전, 당포해전, 한산도대첩, 부산포해전 등에서 이순신과 함께 일본 수군을 격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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