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리 8세가 맞이한 왕비는 몇 명인가?
헨리 8세는 튜더 왕가의 혈통으로, 부왕인 헨리 7세와 엘리자베스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헨리 8세는 복잡한 여성 편력과 여섯 번의 결혼으로 유명하다. 헨리 8세는 재위 기간 중 종교 개혁, 영국 국교회 수립, 정치적 중앙집권화 등의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헨리 8세 집권기에 영국은 늘어나는 왕실의 비용과 과도한 화폐 발행 등으로 심각한 인플레이션 현상을 겪었고, 공유지의 사유재산화로 농민에 대한 수탈이 극심하였으며, 런던 인구가 크게 증가하여 여러 가지 사회문제가 발생하였다.
헨리 8세와 여섯 명의 왕비
헨리 8세의 여성 편력은 참으로 대단하였다. 1536년 한 해 동안에만 헨리 8세의 첫 왕비인 아라곤의 캐서린이 사망했고 제1계비인 앤 볼린은 참수되었으며, 제인 시모어가 제2계비가 되었다. 제인 시모어가 유일하게 아들을 남기고 사망한 1537년, 헨리 8세의 상심은 꽤 컸던 듯하다. 그 후 3년간 새로운 왕비를 맞아들이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1540년 토머스 크롬웰의 적극적인 권유로 또다시 독일 클레베의 왕녀인 앤을 맞아들이게 된다. 그러나 그해에 바로 이혼하고 역시 같은 해에 제4계비인 당시 19살의 캐서린 하워드와 결혼했다.
결혼한 지 2년 뒤인 1542년에 캐서린 하워드는 간통죄로 참수되었고, 이듬해인 1543년 헨리 8세는 마지막 계비인 캐서린 파와 결혼하여 비교적 안정을 이루었다. 이처럼 다양한 그의 여성 편력의 배경에는 사실 아들을 후계자로 삼아 튜더 왕가를 굳건하게 세우고자 하는 강한 의중도 실려 있었다. 1500년대 당시 사람들도 여성이 왕위 계승자가 되면 그 권력이 결혼과 동시에 남편의 세력권 아래 복속되리라고 우려하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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