헐리우드의 고전 미남 배우 중 한 명으로 대표작으로는 《모비 딕(Moby Dick)》, 《로마의 휴일(Roman Holiday)》, 《앵무새 죽이기(To Kill a Mockingbird)》,《나바론의 요새(The Guns of Navarone》), 《오멘(The Omen)》 등을 들 수 있다.

주립 샌디에이고 교육대학에 입학했지만 의사가 되고 싶었기 때문에 1학년을 마치고 UC 버클리 영문학과와 pre-med로 편입했다. 그러나 학교를 다니던 중 연극 무대에 설 기회를 얻었는데 이때 큰 감명을 받아 연기자가 되기로 결심하고 pre-med 과정은 그만두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1942년 연극 무대를 시작으로 배우 인생을 시작해 1944년에 영화계에 데뷔했다. 1991년 《케이프 피어》를 끝으로 연기 일선에서 거의 물러났다가 2003년 사망했다.

우수한 연기자로서 연기 인생에서 앵무새 죽이기로 오스카 수상 1회/ 노미네이트 4회, 골든글로브상 수상 4회, 노미네이트 3회, 에미상 1회 노미네이트를 비롯해 화려한 이력을 갖고 있으며 온갖 구설수가 오가는 할리우드에서도 깔 곳을 찾기 힘든 대인배로도 명성이 자자하다.

목소리로도 유명한데, 4개의 목소리를 가져 작품마다 다른 목소리를 들려주는 연기를 했다. 물론 일상생활에서도 저런건 아니다. 연기할 때 같은 목소리만 낸다면 관객들에게 연기가 항상 같게 다가올 수 있기 때문에 인위적으로 다른 목소리를 내려고 한 것. 다만 이 것 때문에 성대에 문제가 생겨 상대적으로 일찍 배우에서 은퇴했다.

생전에 배우로서 가장 좋아한 여배우는 오드리 헵번이었다고 하며 《로마의 휴일》 촬영당시 자신의 명성에 비하면 듣보잡 여배우인 헵번의 잠재성을 알아보고, 포스터에 공동 주연으로 그녀의 이름을 올리게 어필했다고 한다. 자신의 이름만 크게 박혀있는 포스터를 보고는 헵번이 오스카상을 탈 게 분명한데, 포스터에 내 이름만 나와있으면 날 얼마나 치졸한 사람으로 보겠느냐. 라면서 제작사에 강력하게 요청했다고. 오드리 헵번 작고 직후 1993년 오스카 시상식에서 오드리 헵번의 진 허숄트 박애상 수상의 시상자로 서기도 했다.

정치적으로는 상당히 진보적이었다고 한다. 데뷔 5년차일 때 매카시즘을 반대했으며 베트남 전쟁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태도를 견지했다. 이 외 핵무기와 총기 무장에 대해서도 비판했다. 때문에 닉슨의 블랙리스트에도 올라왔던 적이 있었다. 리버테리안인 찰턴 헤스턴과도 친하게 지냈다.

트레이드 마크는 아치같은 눈썹 모양. 라이프지는 "링컨처럼 사나이답고 윤곽이 뚜렷한 얼굴 생김새는 여성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라고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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