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도라 덩컨의 남편이었던 러시아 시인은 누구인가?
이사도라 덩컨
샌프란시스코에서 출생한 미국 무용가로 모던댄스의 선구자이다. 뉴욕·시카고의 최초공연이 성공하지 못하여 미국에서는 불우한 생활을 보냈으나, 1899년 유럽으로 건너가 런던에서 작은 규모의 리사이틀을 열어 인정을 받은 뒤, 파리·부다페스트·베를린·러시아 등 각지를 순회하였다.
전통적인 투투(tutu)와 토슈즈(toeshoes)는 육체를 속박하는 것이라면서 싫어하여, 투명한 의상을 입고 맨발로 춤을 추는 등 고전발레 형식을 배격하고 자유로운 무용을 제창, F.쇼팽 등의 곡에 맞추어서 반(半)즉흥적으로 춤을 추었으며, 그리스신 바코스의 무녀(巫女)를 흉내내어 격렬하고도 도취적으로 머리를 뒤로 떨어뜨리면서 춤추기도 하였다.
이러한 이사도라 덩컨의 춤세계관은 그 시대의 여러 예술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으며, 20세기 초 미국 여성들의 자유의 표상이었으며 자유주의 운동에도 영향을 미쳤다. 또한 베를린·모스크바에 무용학교를 설립하여 무용수 양성에 힘썼고 G.크레이그·P.싱어·S.A.예세닌 등과 교제한 것으로 알려졌다.
1913년 사고로 두 아이를 잃었으며, 1927년 9월 자신이 타고 있던 차의 뒷바퀴에 스카프가 말려들어가 질식사하였다.
주요 작품은 아베마리아(1914), 마르세이즈(1915), 슬라브행진곡(1916) 등이 있으며 저서로서는 자서전인 《나의 생애(1927)》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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