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레바 마리치(Mileva Marić, 1875년 12월 19일 ~ 1948년 8월 4일)는 세르비아의 과학자이다.

1896년 가을, 취리히 공대에서 중등학교의 물리학과 수학 교원 양성 과정을 밟았으며 여기서 동급생인 알버트 아인슈타인을 만나게 된다. 그녀는 당시 여섯 명의 동급생들 중 유일한 여성이었다. 1901년에 아인슈타인의 아이를 임신하면서 그녀의 학업은 완전히 중단되었다. 그들의 첫아이는 딸이었으며 리제를(Lieserl)로 이름을 지었으나 이 딸은 1903년 여름에 사망하거나 혹은 입양되었다. 1903년에 베른에서 아인슈타인과 결혼하였다. 당시에 아인슈타인은 스위스의 특허사무소에서 일하고 있었다. 1904년에는 첫 번째 아들 한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 태어났다. 그들은 1909년까지 베를린에서 살았다. 1909년에는 아인슈타인이 취리히 대학교의 강사가 되었고 1910년에 부부는 두 번째 아들 에두아르트(Eduard)를 낳았다. 1911년에는 아인슈타인이 프라하의 찰스 대학교에서 가르치게 되면서 그리로 이사하였다. 한 해 뒤인 1912년에 아인슈타인이 모교인 취리히 연방 공과 대학교에 교수로 부임하게 되면서 그들은 다시 취리히로 돌아왔다. 1913년에 저명한 물리학자 막스 플랑크 등의 권유로 아인슈타인은 베를린으로 옮기게 되었다. 그러나 1914년에 밀레바 마리치는 아인슈타인과 별거하면서 베를린에서 두 아들을 데리고 나와 다시 취리히로 돌아왔다. 그리고 1919년에 그들은 완전히 이혼하였다. 아인슈타인은 같은 해에 두 번째 부인과 결혼한 후에 취리히를 방문해서는 밀레바 마리치와 두 아이의 미래에 대해 의논하였다. 1921년에 아인슈타인이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하였을 때에 그는 상금의 전액을 밀레바 마리치에게 보육료로 지불하였다. 마리치는 이 돈으로 세 채의 주택을 샀는데 훈텐가(Huttenstrasse)의 집에서는 그녀와 아이들이 살고 나머지 두 집은 투자를 하였다.

1930년에 두 번째 아들 에두아르트가 조현병 진단을 받았다. 이에 그녀는 병원비에 보태기 위해 나머지 두 채의 집을 팔았다. 1939년에는 훈텐가의 주택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 소유권을 아인슈타인에게 이양하였으나 그녀는 주택의 대리인 자격을 유지하였다. 아인슈타인은 계속해서 그녀와 에두아르트를 위해 생활비를 보냈다. 밀레바 마리치는 1948년 8월 4일에 취리히에서 72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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