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스티나 성당의 천장화 '최후의 심판'을 그린 이는 누구인가?
조각가 미켈란젤로(Michelangelo di Lodovico Buonarroti Simoni, 1475~1564)는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화 〈천지창조〉를 그리고 본업인 조각가로 되돌아갔다. 약 25년이 흘러 환갑이 된 그에게 교황 바오로 3세(Paulus III, 1468~1549)는 선대의 클레멘스 7세(Clemens VII, 1478~1534)가 계획했던 대로 서쪽 벽에 〈최후의 심판〉을 그리라는 명령을 내렸다. 6년의 작업 끝에 14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벽면에 온갖 인간의 형상을 망라한 391명의 육체의 군상이 드러났다. 해부학에 정통하고 원래 조각가인 미켈란젤로만이 해낼 수 있는 대작이 탄생한 것이다. 이로써 시스티나 성당의 벽화와 천장화로 『성경』을 회화화하는 거대한 작업이 완성되었다.
그림 속 나체에 기저귀를 채워야 했던 웃지못할 에피소드
〈최후의 심판〉은 1541년 10월 31일 모든 로마 시민의 찬탄 속에 공개되었다. 그림 속 인물들은 처음에는 모두 나체였다. 나체가 불경하다고 시민들과 교회의 권력자들이 아우성을 쳤으나 미켈란젤로는 대가의 카리스마로 꿋꿋하게 버텼다. 그러나 1564년 교황 비오 4세(Pius Ⅳ, 1499~1565)는 나체의 부끄러운 부분을 모두 덧칠로 가리라는 명령을 내렸는데, 연로한 미켈란젤로가 움직이지 않자 그의 제자인 다니엘레 다 볼테라(Daniele da Volterra, 1509~1566)가 나체에 기저귀(!)를 채우는 임무를 수행했다. 그래서 그에게는 '브라게토네'(Braghettone: 기저귀를 채우는 사람이라는 뜻)라는 별명이 붙었다. 다행히도 미켈란젤로의 또 다른 제자 마르첼로 베누스티(Marcello Venusti, 1515~1579)가 덧칠하기 전의 작품을 모사해 놓아서 후대에 원작의 모습을 이해할 수 있게 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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