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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구소련이 우주 개발을 놓고 벌인 '우주 경쟁'이 있었던 기간은?
미국과 구소련 간의 치열한 우주 경쟁 때문에 우주 비행의 역사는 놀라울 만큼 발전되었다. 구소련이 1957년 10월 4일에 세계 최초로 스푸트니크 1호를 쏘아 올리자 미국도 3개월 늦은 1958년 1월에 익스플로러 1호를 발사하였다. 또한 당황한 미국은 육ㆍ해ㆍ공군의 미사일 개발팀을 묶어 1958년 10월 1일에 미국항공우주국(NASA)을 설립하였다. 그 후 미국을 더욱 놀라게 한 것은 구소련이 1961년 4월 12일 27세의 공군 중위 가가린을 보스토크 1호에 승선시켜 지구를 한 바퀴 돌고 무사 귀환하도록 한 일이다. 당황한 미국도 1958년에 머큐리 계획을 발표하였다. 미국은 1961년 5월 5일 미국의 최초 유인 우주선 프리덤 7호에 셰퍼드를 태워 보냈다. 비록 포물선을 그리며 500㎞를 나는 탄도 비행을 했을 뿐이지만 미국은 자신감을 얻게 되었다. 마침내 1962년 2월 20일 글렌 대령이 탑승한 프렌드십 7호가 지구를 3회전 한 뒤 돌아왔다. 비로소 미국도 완전한 유인 우주 비행에 성공한 것이다. 이러한 우주 경쟁은 계속 구소련이 조금씩 앞서갔기 때문에 미국의 애를 태우곤 하였다. 1965년 구소련의 레오노프가 우주 산책을 성공시키자 미국도 제미니 4호로 21분간의 우주 산책을 성공시켰다. 1965년 2월 3일에는 구소련의 루나 9호를 달에 처음 착륙하고 뒤이어 미국의 서베이어 호도 달에 착륙하는 등 그야말로 불꽃 튀는 경쟁을 하였다. 야심에 찬 미국도 1968년에는 아폴로 8호로 달 궤도를 돌면서 달의 모습을 TV에 생중계하는 기술로 구소련을 조금씩 앞서가기 시작했다. 우주 개발에 뒤진 미국은 러시아보다 먼저 달 표면에 사람을 보낼 계획을 세우게 된다. 이것이 아폴로 계획이다. 이런 계획에는 냉전 시대의 경쟁 상대인 구소련이 항상 한발 앞서가는 데에 대한 경쟁의식이 작용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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