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드니(Sydney)는 오스트레일리아 뉴사우스웨일스주의 주도이다. 시드니 사람들은 스스로를 ‘시드니사이더(Sydneysider)’라고 부른다. ‘뉴요커’나 ‘파리지엔’과는 사뭇 어감이 다르다. ‘시드니사이더’는 주류 집단에서 소외됐다는 의미의 ‘아웃사이더’에서 빌려온 개념이다. 1788년 시드니에 상륙한 영국인들은 죄수와 물먹은 관리, 실패한 장사꾼 같은 이른바 ‘언더독(underdog)’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모국으로부터 버림받았다는 열패감에서 ‘시드니사이더’라는 자기모멸적인 별칭을 만들어 냈다. 그런데 시드니로 유배된 죄수들 가운데 절반가량은 노동운동가 부류였다. 당시 산업혁명이 시작됐던 영국에선 노동자 계층이 한창 부상하며 자본가와 맞서고 있었다. 자본가들은 이들의 요구 가운데 임금 인상이나 근로시간 단축 같은 것은 웬만큼 수용했지만, 지배계급에 도전해 ‘의식화’를 주도하는 이들은 결코 용납하지 않았다. 정부와 자본가는 한 통속이 되어 이런 노동운동가들에게 20년, 30년의 장기형을 선고해 호주로 송출했다. 이들은 ‘괘씸죄’ 때문에 형기를 마쳐도 본국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잘 알았기에 시드니로 향하는 배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미지의 땅에 모든 인간이 평등한 노동자 천국을 만들자”고 다짐했다. 죄수들은 열심히 일해 식민지를 건설했고, 이들의 협력이 필요했던 정부 관리들도 일정 기간이 지나면 이들을 자유민으로 풀어주고 토지 소유를 허용해 미래를 개척할 수 있게 했다. 이렇듯 시드니에서 발아한 인류 평등주의는 그대로 호주의 건국이념이 됐고, 이 정신은 지금도 시드니사이더들의 가슴속에 면면히 흐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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