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전 종식의 상징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1945년 5월 8일 나치스 독일이 연합군에 항복한 후, 동서양 독일의 성립 속에서 독일제국의 수도였던 베를린은 동독일 영역 내에 있으면서 그것 자체가 동서양 진영간에 분단되는 형태가 되어 이른바 냉전의 최전선에 위치하게 되었다. 동서의 베를린은 당초 물리적으로는 격리되어 있지 않았지만 동측에서 서측으로의 이주자(특히, 숙련 노동자나 젊은 노동자)가 끊이지 않자, 이것을 막기 위해 1961년 8월 13일에 동독일 정부가 경계를 차단하여 동ㆍ서 베를린 사이에 약 40㎞에 이르는 콘크리트 담을 쌓았는데, 이 벽은 냉전체제의 상징물로 되었다. 이 장벽을 쌓은 후에는 브란덴부르크문을 통해서만 허가를 받아 왕래가 허용되었다. 장벽의 동측은 엄격한 감시하에 놓여졌지만 벽을 넘어서 동측에서 서측으로 망명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계속 이어졌으며 베를린에서 벽을 넘다가 경비병의 총격 등으로 목숨을 잃은 사람은 80명에 이르렀다.
냉전의 전개에 따라 구축된 이 장벽은 서독일의 꾸준한 통일노력과 냉전의 종언으로 붕괴되었다. 동독일에서 서측으로의 여행의 자유는 1986년 이후 상당히 확대되어 동유럽 사회주의권 국가에서의 개혁운동 가속화의 과정에서 1989년이 되자 체코슬로바키아를 경유하여 서측으로 나오는 동독일 국민의 수가 급증하였다. 그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1989년 11월 9일 동독일 정부가 내린 결정 중에 ‘외국으로의 사적 여행은 이유의 제시 없이 신청할 수 있다’는 조항이 있으며 그것을 벽의 문이 열린 것이라고 해석한 동측 국민의 움직임에 직면하여 정부는 벽을 개방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베를린 장벽이 이렇게 하여 실질적으로 붕괴됨으로써 독일 통일의 목소리도 높아지기 시작하여 1990년 10월 독일 통일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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