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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 하워드, 셈프 하워드, 래리 파인을 원년멤버로 하는 코미디 쇼는?
흩어져라! 그들이 처음 보드빌 무대로 걸어 올라간 1922년부터 마지막 멤버까지 모두 은퇴한 1970년대 초까지, 쓰리 스투지스는 미국에서 가장 인기 있고 오래 가는 코미디 팀의 위치를 고수했다. 그들의 슬랩스틱은 주먹질과 따귀와 눈 찌르기 등의 공격적인 스타일이었다.
50년이 넘는 동안 이 세 남자는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직업을 웃음거리로 만들었다. 의사, 요리사, 해충 박멸가인 쓰리 스투지스! 이 폭넓은 익살극의 표면 아래에는 고용문제에 관한 미묘한 풍자가 그들 각자의 페르소나에 깃든 채 숨어 있다. 실수투성이인 부하들에게 항상 일을 떠넘기는 엄격한 감독 모는 화면 안팎에서 이 무리의 최고경영자였다. 래리는 독립적 사고 능력이 없는 중간 관리이며, 세 번째 스투지는 일꾼이자 코미디의 초점이었다. 이 역할은 변동이 심해서 여러 코미디언이 거쳐 가며 맡았다.
이야기는 최고의 주가를 올리던 보드빌 스타 테드 힐리(1896~1937)와 함께 시작된다. 그는 다른 이들의 멍청한 짓에 지쳤다는 듯 분통을 터뜨린다. 여기서 모 하워드와 그의 형 셈프(Samuel Horwitz, 1895~1955)와 래리 파인이라는 스투지스 원년 멤버들이 등장한다. 그들이 함께 한편의 영화(「미치광이들에게 수프를(1930)」)를 만든 후 셈프는 동생 컬리(Jerome Horwitz, 1903~1952)에게 그 역할을 넘긴다.
스투지스는 계약을 둘러싼 논쟁으로 힐리와 갈라서고 모와 래리와 컬리는 콜롬비아 영화사에 자리를 잡고 24년 연속 매년 아홉 편이라는 기록적인 속도로 단편 코미디를 만들었다. 컬리가 1947년에 은퇴한 후 조 배서(Joe Besser, 1907~1988)가 그 자리를 메웠지만 콜롬비아는 결국 1957년에 스투지스 코미디의 제작을 중단했다.
TV에서 스투지스의 단편들이 다시금 인기를 얻자 장편과 라이브 공연, 심지어 카툰 시리즈 등의 새로운 기회들이 찾아왔다. 뚱뚱한 코미디언 조 데리타(Joe DeRita, 1909~1993)가 베서의 자리를 이어받아, 래리가 뇌졸중에 걸리고 모도 은퇴해야만 했던 1970년까지 그들의 연기는 계속되었다. 「쓰리 스투지스 헤라클레스를 만나다(1962)」와 같은 후기작은 비록 1934년 아카데미상 후보에도 오른 「맨 인 블랙(1934)」과 같은 선구적 걸작과는 비교도 안 되는 졸작이었지만, 쇼 비즈니스라는 치열한 경쟁의 세계에서 혜안이 번득이는 그들의 장수에 존경심을 품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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