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출신의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인 사진 속 인물의 이름은 무엇일까요?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Sergei Rachmaninoff)는 러시아 출신의 마지막 낭만파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 유명한 피아니스트이자 지휘자이던 사촌 알렉산드로 실로티의 권유로 모스크바의 저명한 피아니스트 니콜라이 즈베레프의 가르침을 받게 된다. 그는 모스크바 음악원에 입학하여 S. I . 타네예프와 A. S. 아렌스키에게 작곡을 배운다. 재학 중에 이미 작곡을 시작하여 졸업 당시 1892년에는 단막 오페라 <알레코>로 금상을 받는다. 또한 그해 초연한 전주곡 C# 단조는 그에게 처음으로 명성을 가져다준 곡이다. 1899년 런던에서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 지휘자로서의 명성을 얻고, <피아노협주곡
제2번>(1901)으로 글린카상을 받았다. 1905년 볼쇼이극장의 지휘자가 되었고, 1906년 드레스덴으로 이주한다. 이곳에서 그는 교향시 <죽음의 섬>(1909)과 <피아노 협주곡 3번 D단조>(1909) 등을 작곡한다. 1909년 미국에 건너가 지휘자 및 피아니스트로서 큰 명성을 얻으나 러시아로 돌아간다. 1910년부터 모스크바 극장 및 마린스키 극장의 지휘자를 역임하였으나 1917년 러시아혁명이 일어나자 이를 피해 미국으로 망명한다. 그러나 그는 러시아를 그리워하였으며 늘 소외감을 느꼈다. 그로 인해 그는 이때 독창적인 작품은 거의 작곡하지 않고 몇 작품을 개작했을 뿐이다. 다만 미국과 유럽에서의 연주활동에 전념하였고, 이미 그 분야에서 독보적이었다. 제2차 대전에서 소련의 패색이 짙어지자 모금 연주회를 개최하는 등 구국 운동에 앞장서기도 한다. 그 후 소련 당국의 권유로 귀국 준비를 하던 중 병사한다. 그는 동시대 가장 탁월한 피아니스트의 한 사람이었으며, 20세기에 활동하였음에도 일종의 회고적 경향을 띠며 19세기 차이콥스키가 구체화한 낭만주의 음악어법의 마지막 작곡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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