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산드리아(Alexandria)

이집트 북부 알렉산드리아주(州)의 주도(州都).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제국(帝國) 내에 세운 도시 중 자기 이름을 붙인 것은 알렉산드리아 외에도 많이 있는데, 가장 유명한 도시가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이다. BC 331년, 대왕의 이집트 원정 때 나일강 하구에 건설되었으며, 나중에 프톨레마이오스가(家)가 다스리는 이집트의 수도가 되어, 헬레니즘 시대의 문화·경제의 중심으로서 발전하였다.

정연(整然)한 도시계획에 따라 만든 도읍으로 왕궁·세라피스신전·파로스섬의 등대 등이 있었다. 특히 왕가의 보호정책 때문에 학문과 예술이 발전하고, 자연과학의 연구가 활발하였다. 무세이온(학문연구소)과 그 부속도서관·천문대·해부학연구소·동물원 등이 설립되었으며, 기하학의 유클리드, 지리·역사·자연과학의 에라토스테네스, 지리학의 프톨레마이오스, 문헌학의 칼리마코스 등의 대학자를 배출하였다.

한편, 남해무역의 발전과 함께 무역항으로서도 번영을 누렸으며, 인도·아라비아·아프리카의 산물과 이집트의 국내산물을 지중해 각지에 보내는 대수출항이 되었다. 또 유리공업을 비롯한 공업도 활발하였다. 그러나 카이사르가 점령한 후부터 제1차 번영기는 끝났다.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의 계획은 이 도시를 세계제국의 중심으로 만들려는 것이었으나, BC 31년의 악티움 해전과 BC 30년의 프톨레마이오스 왕국의 멸망으로 수포로 돌아갔다. 로마제정기에는 다시 번영하였으나, 그리스도교가 전파되어 종교적 분쟁의 거리로 변화하였다.

3세기에는 신(新)플라톤파(派) 철학의 중심지가 되었으며, 클레멘스·오리게네스 등의 신학자가 탄생하였다. 그후 오래도록 학술의 중심이라는 위치를 유지하였으나, 640년 이후의 아랍 지배하에서는 쇠퇴하였다.

1517년부터는 오스만투르크의 지배하에 들어갔으며, 1798∼1801년의 나폴레옹 1세 점령 때에는 작은 어촌으로 전락하였다. 그러나 19세기로 접어들어 메메트 알리가 지배하기 시작한 후부터는 번영을 되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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