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이 죽은 뒤 형의 아내와 결혼한 영국왕은?
캐서린 아라곤
영국왕 헨리 8세의 첫번째 왕비. 헨리 7세의 맏아들 아서와 결혼했으나 사별하고 아서의 동생 헨리 8세와 재혼하였다. 헨리가 그녀와 이혼하고 시녀와 결혼한 후에도 끝까지 합법적 왕비임을 주장하였다.
에스파냐 북부지역의 왕국인 아라곤(Aragon)의 왕 페르난도 2세와 카스티야 왕국의 여왕 이사벨 1세의 막내딸이다. 에스파냐 명으로는 인판타 카랄리나(Infanta Catallina)이다. 캐서린의 언니인 후아나(Joanna)는 합스부르크 왕가로 시집을 갔는데 아들 카를을 낳았다. 카를은 할아버지 막시밀리안 1세 황제가 사망하자 신성로마황제가 되었으며 합스부르크 왕가의 대를 잊는 카를 5세가 되었다. 캐서린의 카를의 이모가 된다.(후일 에스파냐 페르난도 2세가 사망하자 에스파냐는 외손자인 카를에게 넘어가게 되었다.) 에스파냐와 프랑스는 적대적인 관계였는데 잉글랜드와 우호적인 동맹을 맺기 위해 정략적인 결혼을 했다. 1501년 잉글랜드의 왕이자 튜더 왕조의 시조인 헨리 7세의 맏아들 아서와 결혼했으나 결혼 5개월 만에 남편이 사망하고 16세에 미망인이 되었다. 캐서린은 모국인 에스파냐로 돌아가기를 원했지만 시아버지인 헨리 7세는 그녀를 돌려보내지 않았다. 헨리 7세가 가장 싫어하는 프랑스와 에스파냐가 동맹관계를 맺을까 두려워 하였고 그리고 에스파냐 아라곤 페르난도 2세 또한 정치외교적 목적 때문에 캐서린이 계속 잉글랜드에 머물며 아서의 동생과 재혼하기를 원했다. 1509년 아서의 동생이 헨리 8세로서 잉글랜드 왕으로 즉위하자 캐서린은 그와 재혼하였다. 당시 형제의 아내를 취하는 것은 종교적으로도 문제였지만 이는 묵살되었고 당시 교황 율리오 2세의 승인까지 받았다.
남편 헨리 8세 사이에서 몇 명의 자녀를 낳았으나 딸 메리(메리 1세)만 남고 모두 요절하였다. 헌신적으로 남편을 섬겼으나 헨리는 그녀의 시녀였던 앤 불린과 사랑에 빠졌고 아들이 없는 것이 원인이 되어 남편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1531년 이후 별거당하였다. 1534년 헨리 8세가 교황 클레멘스 7세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그녀와 이혼하고 시녀 앤 불린과 재혼하였다. 이때문에 잉글랜드에서는 로마 가톨릭과 단절하고 수장령을 발표하며 영국 종교개혁의 계기가 되었다. 캐서린은 헨리 8세와 이혼을 한 후 여러 차례의 압박에도 굴하지 않고 끝까지 합법적인 왕비임을 주장하였다. 캐서린의 딸 메리가 잉글랜드 튜더 왕조의 왕위를 이어 메리 1세가 되었다. 하지만 그녀는 건강이 나빠 5년의 치세로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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