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중 표면상으로는 모순되거나 불합리해 보이지만, 해석의 과정을 거쳤을 때 진실을 담고 있는 진술을 말하는 것은 무엇인가?
표면상으로는 말이 안 되는, 즉 자기 모순적이고 부조리한 것처럼 보이지만, 해석의 과정을 거쳤을 때 그 의미가 올바르게 전달될 수 있는 진술, 곧 진실을 담고 있는 진술을 말한다. 이는 공통된 견해(공론)와 상반되는 진술을 통해 의미를 전달하는 것으로, 퀸틸리아누스는 이를 '예기치 못한 것'이라고 했다. 이렇게 볼 때 역설은 간단히 말하면 대화 상대자 혹은 독자의 기대에 역행하는 언술 행위를 뜻한다. 따라서 그것은 '우스꽝스러운 것이거나 가증스러운 것'이 되기 쉽다. '반대'를 뜻하는 그리스어 'para'와 의견을 뜻하는 'doxa'의 합성어이며, 배리(背理)·역리(逆理) 또는 이율배반(二律背反)이라고도 한다.
하지만 역설은 공론 즉 의미에 대한 비논리적인 역행이 아니라 다른 의미, 곧 보다 근본적이고 중요한 의미로 대체시키기 위해서만 공론을 배제하는 언술 행위이다. 즉 그것은 일반적인 의미행위를 넘어서고자 하는 의미행위인 것이다. 잘 알려진 김소월의 「진달래꽃」의 한 구절은 역설의 이러한 측면, 곧 의미의 확대로서의 역설의 특성을 잘 보여준다.
가시는 걸음 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 밟고 가시옵소서
'즈려'는 평안도 사투리로 '짓밟다'는 의미이다. 이 '즈려'가 '사뿐히'라는 모순된 수식어를 만나 독특한 시적 효과와 함께 의미의 확장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서구의 문화사에 있어 역설은 수사학적 측면과 논리학적 측면에서 논의되어지고 연구되어 왔다. 소크라테스의 아포리아(aporia) 철학과 제논의 역설은 그 고전적 모습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논의들이라 할 수 있다. 이후 역설은 근대에 와서 특히 문학 분야에서 주목받았는데 신비평가들, 그 중에서도 부룩스(Cleanth Brooks)에게는 "시의 언어는 역설의 언어"라는 주장을 하도록 할 만큼 시어의 근본적 속성으로 받아들여졌다. 이후 역설은 바르트(Roland Barthes)의 독사(Doxa)의 거부와 혁신으로서의 패러독스 논의를 통해 다시 한번 강조되며, 해체(Deconstruction)이론에서 보여지는 언어의 의미의 비확정성 논의를 통해서도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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