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레 "백조의 호수"는 누구의 작품인가?
표트르 일리치 차이콥스키(Piotr, Ilyitch Tchaikovsky)
보트킨스크 태생인 러시아의 작곡가. 광산 기사와 음악을 좋아하는 프랑스계의 모친 사이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매우 음악을 좋아하고, 또 이상할 정도로 음에 대해 민감했다. 1848년에 그의 집안이 페테르부르크에 이사하자, 그곳에서 체계 있는 음악 공부를 시작했다. 그러나 1848년에 부친의 의사대로 법률학교에 입학하여, 졸업 후에는 법무성의 서기로 근무했으나, 음악에 대한 애착이 강해서 1863년에 관리 생할을 사직하고, 그 전해에 발족한 페테르부르크 음악원에 입학하여 안톤 루빈슈타인에게 사사했다. 졸업한 뒤인 1864년 안톤의 동생 니콜라이 루빈슈타인이 문을 연 모스크바 음악원에 초대되어 교편을 잡고, 이 무렵부터 본격적인 작곡 활동에 들어갔다. 1868년에는 처음으로 발라키레프를 중심으로 하는 ‘5인조’의 사람들과 만났으나, 차이콥스키는 이들 국민악파의 작곡가로부터 영향은 받으면서도, 유럽 음악의 전통을 존중하는 입장을 취하여, 러시아 민족적인 것과 서유럽적인 것의 절충적 작풍을 고수했다. 그 때문에 그는 흔히 서유럽파라고 불린다.
1877년에 그의 여제자였던 안토니나와의 결혼에 실패하고 이혼한 뒤, 극도의 신경 쇠약 때문에 학교 생활과 작곡 활동에 많은 지장을 받았다. 그러나 1876년부터 그의 예술을 사랑하고 있던 부호인 폰 메크 미망인으로부터 매년 상당한 연구비와 생활비를 받게 되었는데, 그는 평생 동안 부인을 만날 기회가 없었으나, 경제적, 정신적으로 절대적인 원조를 얻을 수가 있었다. 또 얼마 후에는 러시아 황제로부터 연금을 받을 수 있게 되자, 교직을 사임하여 작곡에 전념할 수 있었다. 이 무렵부터 작품상으로도 제 1 피아노 협주곡, 발레 《백조의 호수》, 가극 《에프게니 오네긴》, 바이올린 협주곡 등의 걸작이 연달아 만들어지고, 스위스나 이탈리아 등 국외로 여행하는 일이 많아졌다. 1888년에는 자작의 지휘, 소개를 겸해서 널리 유럽 각지에 연주 여행했고, 1892년에는 미국으로 가서 지휘자로, 이듬해에는 런던에서 음악 활동을 최후로 귀국하여, 페테르부르크에서 제6 교향곡 《비창》을 초연했으나, 한 달후인 11월 2일 콜레라에 걸려서 53세를 일기로 불의의 죽음을 당했다
그의 음악은 서유럽적이라는 말을 듣지만, 러시아적인 센티멘탈리즘을 바탕으로 하고 있으며, 낭만적인 표현을 큰 매력으로 하고 있는 19세기 러시아 최대의 작곡가이다.
주요 작품: 가극 《에프게니 오네긴》(1878), 발레 《백조의 호수》(1876), 《잠자는 숲 속의 미녀》(1889), 《호두까기 인형》(1892) , 7곡의 교향곡 중 제4번(1877), 제5번(1888), 제6번 《비창》(1893), 피아노 협주곡 제1번(1875), 바이올린 협주곡(1878), 서곡《1812년》(1880), 《이탈리아 기상곡》(1880), 《현악 세레나데》(1880), 3곡의 현악 4중주곡, 피아노 3중주곡, 피아노곡, 가곡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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