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로켓공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이는?
로버트 고더드
현대 로켓공학의 아버지
고더드는 대학에서 공학과 물리학을 공부했다. 그 시절 그는 자이로스코프 를 써서 비행기 안정성을 향상시키는 방안에 대한 글을 써서 <사이언티픽 아메리칸>지에 투고하기도 했다. 박사학위를 받고 프린스턴 대학의 특별연구원이 된 그는 진공관 개발 연구를 하는 틈틈이, 자신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로켓의 비행과 관련된 수학적 문제들, 즉 로켓과 추진제의 무게와 분출되는 가스 속도 사이의 관계를 연구하는데 몰두했다. 1916년 고더드는 클라크 대학의 물리학 교수가 되었다.
고더드는 1919년 <극한 고도에 도달하는 방법>이라는 논문을 스미스소니언 협회를 통해 발표했다. 제트 추진을 이용하면 지구의 중력권을 벗어나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속도인 이탈 속도를 얻을 수 있다는 이론이 담긴 이 논문에 미국 언론은 의외의 열광적인 반응을 보였다. 기사의 머리 제목을 ‘현대의 쥘 베른, 달로 가는 로켓 발명’이나 ‘새로운 로켓으로 달 여행을 꿈꾸다’라고 뽑은 신문들도 있을 정도였다.
1920년부터 그는 클라크 대학, 미국 해군 등의 지원을 받으며 고체연료 대신 연소조절이 쉽고 열효율이 높은 액체연료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 후로도 연구는 계속되었다. 하지만 대다수 사람들은 그가 하는 연구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지 못했다. 로켓 발사 실험 중 주민들의 항의로 경찰이 출동해 실험 중단을 명령하는 일까지 벌어지기도 했다. 그런 와중에도 그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소수나마 있었다. 그는 대서양 횡단에 성공한 비행사 찰스 린드버그, 구겐하임 재단 등의 지원을 받아 연구를 계속했다.
그는 뉴멕시코 주 로즈웰로 가 새로운 연소 방법과 정밀한 유도 장치를 고안해가면서 실험을 계속했다. 그리고 실험이 거듭될수록 로켓의 비행 거리와 높이는 높아져 갔다. 1935년 5월 31일에는 음속 보다 빠른 속도로 로켓을 쏘아 올릴 수 있었다. 하지만 미국 정부는 고더드의 로켓 연구에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고, 그 사이 독일은 엄청난 위력을 지닌 V-2 로켓을 개발해 실전에 투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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