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랜 세월 동안 영화계의 주도적인 남자배우로 군림해왔던 마이클 더글러스지만, 최근에는 25세 연하의 아내 캐서린 제타 존스와의 재혼 때문에 잦은 가십의 초점이 되고 있다. 그러나 젊은 날은 커크 더글러스라는 스타의 아들인 그에게 아주 관대했다. 넘어서야 할아버지의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져 있긴 했지만, 더글러스는 아주 훌륭하게 그 그림자를 벗어났다.

그가 처음으로 인정과 성공을 얻은 것은 텔레비전의 「샌프란시스코 거리(1972)」에서 형사 역을 연기하면서였다. 젊은 날의 그는 켄 케시의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의 판권을 사두었다가, 잭 니콜슨을 주연으로 영화로 제작하여 아카데미상을 수상함으로써 뛰어난 사업적 감각을 지니고 있음도 증명했다. 동시에 「코마(1978)」와 「차이나 신드롬(1979)」 등의 영화로 계속 카메라 앞에 서면서 연기 활동도 꾸준히 이어갔다. 그러나 그를 빅스타로 만든 것은 「로맨싱 스톤(1984)」이었고 얼마 후 올리버 스톤의 「월 스트리트(1987)」에서 1980년대의 재정적 탐욕의 상징적 인물인 고든 게코 역으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수상하면서 정상의 위치를 차지했다.

그 후로 「원초적 본능(1991)」 같은 히트작들과 「맥쿨에서의 하룻밤(2001)」 같은 아쉬운 영화, 「더 게임(1997)」 같은 실패작이 이어졌다. 그러는 와중에도 그는 「유혹의 선(1990)」과 「레인메이커(1997)」, 「페이스 오프(1997)」 같은 성공적이고 흥미로운 영화를 계속 제작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블랙 코미디 「원더 보이즈(2000)」의 고민에 빠진 영문학 교수 그래디 트립 역 등으로 여전히 감칠맛 나는 연기를 보여주고 있고, 한편으로 어떤 활동 영역은 재능 있는 신예 배우들에게 양보하면서, 또 그렇게 비축해 둔 에너지를 「트래픽(2000)」 같은 유망한 프로젝트들에 쏟아 붓고 있다. 스크린 밖의 그는 민주당의 주목할 만한 지지자이다. 1998년에 그는 UN 평화사절로 임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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