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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속 인물 중 노란색 넥타이를 한 사람은 누구인가?
러시아계 유대인의 아들 멜 브룩스는 뉴욕의 브루클린에서 자랐다. 제2차 세계대전 때는 북아프리카에 주둔한 미육군 공병으로 복무했고, 전쟁이 끝난 후에는 스탠드업 코미디언으로 무대에 서기 시작했으며, 그 후에는 텔레비전 코미디 대본작가로 일했다. 이후에는 영화로 활동 분야를 옮겼는데, 그중 감독과 제작자로서의 활동이 가장 주목할 만하다.
브룩스가 대본과 감독 중 하나를 맡거나 혹은 둘 다를 맡은 영화는 그가 화면에 등장하는 시간이 적거나 없을수록 더 재미있다는 평을 종종 받았는데, 그다지 부당한 평가는 아니다. 그가 짤막하게 목소리 출연만 한 「프로듀서(1968)」와 「영 프랑켄슈타인(1974)」이 그의 가장 좋은 작품들임이 분명하고, 그가 퉁명스러운 백만장자 역을 맡은 「추락한 백만장자(1991)」나 반 헬싱 박사로 등장한 「못 말리는 드라큘라(1995)」처럼 그가 주연을 맡은 영화들은 거의 인내심을 시험하는 영화였으니 말이다.
「프로듀서」에서 케네스 마스에게 돌아간 나치 극작가 역을 맡고 싶어 했던 과장된 희극배우 브룩스는 「12개의 의자(1970)」에서는 비굴한 농부 역을 재미있게 표현했지만, 「불타는 안장(1974)」의 주지사 르페토멘 역과 「스페이스볼(1987)」의 요구르트 역, 또는 「못 말리는 로빈 후드(1993)」의 랍비 터크만 역에서는 재미가 덜했다. 「무성 영화(1976)」에서는 스크린의 중심을 차지하는 멜 펀이라는 인물로서 자신을 온화하고도 익살스럽게 풍자했다.
히치콕을 패러디한 「고소공포증(1977)」에서 연기한 편집증적인 정신분석가가 갑자기 자신감을 상실하고 시나트라 스타일의 청승맞은 라운지 넘버를 멋들어지게 불러대는 장면이 아주 탁월하다. 리메이크작 「사느냐 죽느냐(1983)」에서도 원작의 잭 베니의 기억을 망치지는 않았다. 브룩스는 「프로듀서」를 브로드웨이 무대에 올려서도 상당한 성공을 거두었고 토니상 12개 부문 수상이라는 놀라운 기록을 세웠다. 그는 1964년에 배우 앤 밴크로프트와 결혼하여 그녀가 세상을 떠난 2005년까지 함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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