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그 함마르셸드(스웨덴, 재임 1953~1961)는 1905년 스웨덴에서 태어났다. 웁살라 대학을 우등졸업,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고 경제관련 요직, 외무부 업무를 거쳐 1951년 유엔총회에서 스웨덴 대표단의 부단장으로 유엔에 입성했다. 그는 역대 사무총장 가운데 가장 훌륭하게 사무총장직을 수행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국제사회 분쟁에 있어 세계 언론들이 “다그에게 맡겨라(Let it to Dag)”라고 공공연히 촉구할 정도로 그는 국제사회의 신임을 얻었다. 냉전의 한복판에서 사무총장직을 수행했음에도 그는 강대국 사이에서 균형추의 역할을 훌륭히 수행했던 것으로 평가된다.

그는 조용한 행정가 유형일 것이라는 강대국들의 예상을 깨고 유엔정신에 대한 신념을 바탕으로 사무총장직을 강력히 수행했다. 그의 이러한 리더십이 잘 드러난 사례가 ‘북경법칙(Peking Formula)’이다. 중국(당시 중공)이 한국전쟁에서 추락한 미 정찰기 승무원을 구류한 상황이었다. 미국은 유엔에서 중국정부에 구류된 미 조종사와 승무원들의 신병인도를 요구하는 결의안 906호를 통과시켰다. 함마르셸드는 사무총장으로서 안보리와 유엔총회의 결의사항을 집행할 의무가 있었고, 당시 중국은 유엔 회원국이 아니었기 때문에 미국과 중국의 무력충돌이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이를 막기 위해 함마르셸드는 중국을 전격 방문했다. 이때 그는 유엔결의안이 아닌, 유엔헌장과 유엔의 정신에서 유래한 유엔사무총장의 독립된 자격으로 중국을 방문하는 것임을 분명히 했다. 함마르셸드와 당시 중국 총리 저우언라이가 수차례 논의한 끝에 억류된 미국 승무원 돌려보내기로 중국 정부가 결정하기에 이르렀다. 함마르셸드의 이 같은 적극적 행보는 유엔이 평화와 안전의 ‘공백을 채울 수 있는’ 법적 기구임을 보여준 예다.

1956년 수에즈운하 사태에서도 함마르셸드는 제2차 중동전쟁을 해결하기 위해 유엔헌장의 원칙에 입각한 평화유지 노력을 관철했다. 최초의 유엔 평화유지군 UNEF(United Nations Emergency Force)의 이집트 파견이 그 성과다.

비록 같은 해 발생한 헝가리 사태에서 유엔감시단의 파견은 실패했지만, 함마르셸드는 유엔헌장에 입각한 유엔사무총장의 역할을 적극적으로 해석해 국제 평화를 위해 힘썼다. 이러한 창조적이고 적극적 사무총장 역할론은 후대 사무총장들에게 본이 되고 있다. 그는 1958년 사무총장직 재선에 성공하였으며, 1961년 콩고분쟁 조정을 위한 이동 중 비행기 사고로 순직했다. 그런 그의 업적을 기려 노벨 위원회는 1961년 최초로 사후 노벨 평화상을 수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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