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니발

로마를 쓰러트릴 뻔 했던 카르타고의 명장

제1차 포에니 전쟁 이래 카르타고의 국력은 크게 쇠퇴했지만, 로마와 자웅을 겨루는 게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당시 카르타고 본국은 부패와 정쟁에 찌들어 있었다. 또한 민간인과 군인의 구분이 없던 로마와 달리 직업군인 제도가 전통이던 카르타고에서는 어떤 장군이 혁혁한 공로를 거두면 민간인 정치인들의 의심과 질투의 대상이 되는 일이 많았으며, 농업을 기반으로 하는 세력과 해상 무역을 기반으로 하는 세력 사이의 다툼도 있었다. 이런 저런 이유로 카르타고 본국의 도움을 포기한 한니발은 혼자 힘으로 로마와 싸우기로 했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 ‘발상의 대전환’을 했다.

이전 전쟁에서 ‘로마는 육군의 나라이고, 카르타고는 해군의 나라다’라는 발상을 뒤집어 바다에서도 육지에서처럼 싸우는 방법을 개발하여 로마가 승리를 거뒀듯, 이번에는 바다가 아닌 육로로 로마를 침공, 육전에서 로마를 패배시키겠다는 것이었다. 로마가 서지중해에서만 카르타고 함대가 쳐들어오지는 않나 하고 감시하는 동안, 한니발은 4만의 병력으로 피레네산맥을 넘고, 갈리아를 통과, 다시 알프스산맥을 넘어 이탈리아 북부로 침입했다.

전혀 예상치 못한 방향에서 뛰쳐나온 한니발군에게 로마인들은 혼비백산했다. 그래도 총 75만의 병력을 가진 로마군은 원정 과정에서 절반가량 줄어 이제는 2만 5천뿐인 한니발군을 간단히 무찌를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한니발은 기병대와 코끼리부대(다만 코끼리부대는 그다지 실효성이 없었다는 지적도 있다. 코끼리부대는 결국 나중에 한니발의 발목을 잡는다)를 써서 로마의 중장보병을 뒤흔들어 놓고, 이를 다시 보병대로 밀어붙이는 전법으로 연전연승을 거두었다. 특히 기원전 216년의 칸나에 전투에서는 로마군 8만 명 중 5만 명을 살육했으며, 이는 1916년 솜 전투 이전까지 서양에서 하루에 가장 많은 인원이 전사한 전투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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