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워싱턴

‘건국의 아버지’로 불린다. 버지니아주 출생. 부유한 지주의 아들로 태어나 독학으로 토지측량관이 되었다. 1752년 이복형이 죽자 광대한 마운트버넌의 토지와 버지니아 민병대(民兵隊)의 부대장직을 이어받고 1754년 7년전쟁, 즉 프렌치인디언전쟁에 참가하였다. 애팔래치아산맥 서쪽의 땅이 프랑스인에 의하여 지배되는 것을 반대한 때문이었다. 그후 본국과 식민지와의 항쟁이 일어나자 서부의 토지문제를 놓고 본국의 정책에 크게 반발하였다.

버지니아의회 의원으로서 1765년 P.헨리를 지지, 인지조례(印紙條例)의 반대를 관철시켰으며, 1769년 타운센드법을 반대하다 의회가 해산당하게 되자 영국상품 불매동맹을 결성하였다. 1774년 제1회 대륙회의에, 1775년 제2회 대륙회의에 버지니아의 대표로 참석하고, 이 회의에서 무력항쟁이 결의되자 그는 독립혁명군 총사령관에 임명되었다.

총사령관으로 있으면서 피로에 지친 식민지군을 격려, 역경을 극복해나갔다. 1781년 10월 프랑스군의 원조를 받아 요크타운전투에서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고 독립전쟁을 성공으로 이끌었다. 1783년 강화조약이 체결되자 군대를 해산시킨 뒤 연합회의에 군의 통수권을 반환하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연합회의가 무력하여 미국의 독립이 다시 위기에 처하게 되자 1787년 헌법제정회의가 열리게 되었다. 이 회의에서 그는 의장직을 맡아 새로운 연방헌법을 제정하고 중앙정부의 권한을 강화하였다. 이 헌법에 의하여 1789년 대통령에 당선되고 같은 해 4월 30일 초대 대통령에 취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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