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 퀴리는 1867년 폴란드의 바르샤바에서 태어났습니다. 1883년 바르샤바의 여자고등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했지만, 당시 폴란드와 독일에서는 여자가 대학에 들어갈 수 없었기 때문에 그녀는 파리 유학을 결심, 그 후 1891년 파리의 소르본 대학에 입학하였고, 소르본 대학의 물리학 학사 시험에 수석으로 합격하였습니다.

이후 1895년에 피에르 퀴리라는 남자와 결혼해 프랑스 국적을 얻게 되었습니다. 당시 물리학에서는 새로운 사상(事象)이 잇달아 발견된 시기였는데, 뢴트겐의 X선 발견, H. 베크렐의 우라늄 방사능 발견에 자극받아 퀴리 부부도 방사능 연구에 착수하였습니다.

1898년 퀴리부부는 마리 퀴리의 조국인 폴란드의 이름을 붙인 폴로늄(polonium)이라는 방사능 원소를 발견해 공표하였고, 공동으로 논문을 발표하게 됩니다. 1898년에는 라듐(radium)이라고 이름을 붙인 두 번째 방사능 원소를 발견하여 발표합니다. 이후 둘은 우라늄 광석인 피치블렌드(역청우라늄석)에서 염화바륨에 섞여있는 형태로 소량의 염화라듐을 추출해 냈으며 1902년에는 8톤의 폐우라늄 광석을 처리해 0.1 그램의 순수한 염화라듐을 얻게 됩니다. 1910년에는 마리 퀴리가 염화라듐을 전기 분해하여 금속 라듐을 얻었으며 이들은 방사능(radioactivity)이라는 단어도 만들어냅니다. 특히 라듐은 우라늄에 비하여 훨씬 강한 방사능을 가진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고 합니다.

자연적인 방사능을 처음 발견한 베크렐의 연구를 심화해 새로운 성과를 발견한 퀴리 부부는 1903년 노벨 물리학상을 공동으로 수상하였고, 1911년 방사성 물질 라듐을 광물에서 분리해 내는데 성공해 다시 한 번 노벨 화학상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노벨상 수상소감에서 “라듐이 범죄자 손에 들어가면 위험하다”는 강력한 경고 메시지를 남겼다고 합니다.

마리 퀴리는 그동안의 실험으로 몸이 쇠약해져 1934년 7월 4일 백혈병으로 사망하였습니다. 사후 61년 만인 1995년 4월 20일 남편 피에르 퀴리와 함께 여성으로는 최초로 역대 위인들이 안장되어 있는 파리 판테온 신전으로 이장되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최초’라는 수식어가 많이 붙는 과학자 마리 퀴리! 아인슈타인은 그녀의 죽음에 대해 “그녀가 위대한 과학적 업적을 성취할 수 있었던 것은 대담한 직관에 의한 결과가 아니라 상상할 수조차 없을 정도의 어려움 속에서 헌신적으로 집요하게 파고든 노력의 결과”라고 평가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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