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혁명 과정에서 있었던 바스티유 습격과 관련하여 '바스티유'는 무엇을 가리키는 말인가?
바스티유 감옥은 프랑스 파리에 있던 감옥이다. 프랑스어의 바스티유는 원래 성채, 요새를 뜻하는 보통명사이나 다른 나라에서는 프랑스 혁명 과정에서 있었던 바스티유 습격과 관련하여 파리의 바스티유 감옥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된다. 바스티유 감옥은 원래 백년전쟁 당시 파리 동부 외곽과 오뗄상폴 궁전을 방어하기 위해 요새로 건축되었다. 프랑스의 샤를 5세가 성 안토니 관문으로 건설한 이 건축물은 1370년 - 1383년에 성채가 증축되어 요새의 기능을 담당하였다. 전쟁 후 1400년대에 이르러 바스티유 북쪽에 새로운 관문이 건설되었고 바스티유는 관문의 기능을 잃고 폐쇄되었다. 후일 바스티유는 감옥으로 사용하게 되었는데 처음으로 바스티유에 죄수를 수감시킨 왕은 루이 13세였다. 바스티유에는 평소 대략 50여 명의 죄수가 수감되어 있었으며, 근방의 교도소 중 가장 불결한 환경으로 유명하였다. 바스티유에 수감된 사람들은 대부분 사악한 자라는 평판을 듣는 사람들이었다. 1789년 7월 14일 파리의 군중들은 불길한 소문에 휩싸여 총으로 무장한 채 바스티유 감옥을 습격했다. 흔히 잘못 아는 상식과는 달리, 습격 당시 바스티유에는 7명의 죄를 지은 자들만이 있을 뿐이었고 양심수는 없었다. 습격은 다음날까지 이어졌다. 바스티유 습격은 정부군과 민중 간의 시가전으로 확대되었고 결국 구체제를 붕괴시키는 발단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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